2005년,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새로운 PC의 플랫폼을 발표했다. ‘바이브(ViiV)’다. 바이브는 TV에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둔 PC로, 디자인부터 운영체제까지 기존 ‘컴퓨터’가 아니라 VTR(비디오테이프리코더)나 DVD 플레이어를 목표로 두었다.

당시 인텔과 MS는 거실에 컴퓨터를 놓고 싶어했다. 아니, 모든 IT 업체가 사실 거실에 자신의 플랫폼을 놓고 싶어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텔은 거실 TV마다 PC를 놓으면 CPU의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고, MS는 윈도우를 더 팔 수 있었다. 하지만 바이브가 그리던 그림은 그것보다 조금 더 컸다. 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P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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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밑그림은 썩 나쁘지 않았다. ‘윈도우 미디어센터’는 PC 내부에 담긴 파일을 재생하는 기능도 있지만 콘텐츠 공급자들이 입점해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미디어센터 안에서는 다운로드 방식의 게임도 유통됐다. 입력장치는 키보드 대신 리모컨을 쓰도록 했다. 현재 미디어 플랫폼이 접근하려는 방향성과 비슷하다.

MS는 한발 더 나아가 이 시스템을 거실에 두는 홈서버로 쓰고 싶어했다. 바이브 PC 안에 저장해 둔 음악, 사진, 영상 콘텐츠는 가족들이 개인용 PC 혹은 스마트폰에서 접속해서 보는 그림까지 그렸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멀리 떨어져 있던 시기이니 물리적인 서버가 필요했던 시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실에 또 하나의 큼직한 컴퓨터를 두길 원하지 않았다. 가족이라고 해도 모든 데이터를 한 PC에 모으기도, 또 그것을 다시 네트워크로 끌어당겨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드웨어적으로도 당시의 PC는 전기를 많이 썼고, 상대적으로 성능도 떨어졌다. 미디어센터는 아주 무거운 프로그램이었다. 게다가 거실에 DVD 플레이어와 함께 두어야 했기 때문에 디자인에 신경을 쓰면서 값도 비쌌다. 결국 이 바이브는 인텔이 가장 처참하게 실패한 대표적인 사업이 됐다.

바이브가 나온지 이제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PC는 점점 몸집을 줄여 USB 메모리 정도의 크기로 작아졌다. 그게 최근 화제가 된 ‘스틱PC’다. 올해 초 인텔도 스틱PC를 공개했지만 사실 이미 지난해 하반기에도 비슷한 제품이 나왔던 바 있다. 대만에서 판매하고 있는 스틱PC를 실제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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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PC는 매우 단순한 구조로 돼 있다. 인텔 아톰 듀얼코어 프로세서에 2GB 시스템 메모리, 10GB의 저장공간을 가진 시스템이다. 키보드나 마우스를 연결할 수 있는 USB 포트가 달렸고, 무선랜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부족한 저장공간은 마이크로SD카드로 확장하면 된다.

이 스틱PC는 그 자체로 HDMI 단자를 갖고 있어 TV나 모니터의 HDMI 포트에 PC를 꽂고 마이크로USB로 전원을 연결하면 켜진다. 운영체제는 윈도우8.1이 깔려 있어 사자마자 그대로 쓸 수 있는 완제품 PC다. 값은 100달러가 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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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은 썩 신통치는 않다. 아톰 넷북을 떠올리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TV에서 간단히 웹서핑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는 데는 충분하다. 유튜브에서 4K 동영상을 재생해도 잘 돌아간다. 10년 전에 이런 형태의 PC를 만들 수 있었다면 바이브는 어떻게 됐을까. 스틱PC는 반도체 기술의 발전이 만든 또 하나의 볼거리다.

홈시어터 PC, 바이브, 스마트TV까지 TV를 똑똑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업계의 오랜 숙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구름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바이브의 실패 이후 인텔은 다소 의기소침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는 그나마 TV 옆자리를 유일하게 지키는 게임기를 가정용 플랫폼으로 지목했다. 구글은 아예 PC나 셋톱박스 없이 모든 것을 클라우드로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가전업계는 TV 자체를 ‘스마트’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방송과 통신 업계는 TV 셋톱박스를 고도화시켰다. 답은 뭘까? 아직도 업계는 그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에 나온 스틱PC는 TV에서 쓰기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게임도 하고 업무도 처리하는 PC로 쓰기에는 부족하지만, TV가 스마트해지기 위한 첫 번째 목적을 ‘콘텐츠’에 두었다면 괜찮은 답이다. 현재 가장 많은 콘텐츠를 제한없이 재생할 수 있는 기기와 운영체제는 x86 기반의 윈도우 시스템이다. 플레이어와 코덱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서비스들도 윈도우용 환경을 최우선에 둔다.

애플 아이튠즈나 구글의 구글플레이도 윈도우 안에서 매끄럽게 작동한다. 최근 스마트TV들이 너도나도 끌어안고 있는 넷플릭스도 윈도우에서 돌린다.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거실에 어울리지 않는 입력장치가 필요한 것은 윈도우의 가장 큰 단점이지만 어떻게 보면 TV를 가장 쉽게 스마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PC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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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면 그간 전 세계 가전회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내놓았던 스마트TV는 바이브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현재 나온 스마트TV는 플랫폼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모두 1년짜리였다. 한 해가 지나면 앱과 콘텐츠 지원이 끊어지고 아무도 쓰지 않는 서비스를 플랫폼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물론 스틱PC가 스마트TV의 정답은 아니다. 정답에 가까울 뿐이다. 오히려 이렇게 작은 PC가 나올 수 있는 환경에 과거 미디어센터를 밀던 인텔과 MS의 과감함이 없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렇다고 해도 윈도우는 저전력 프로세서와 플래시메모리를 끌어안고 TV에 그럴싸하게 잘 어울리는 환경이 됐다. 스틱PC의 가장 큰 매력은 간단하다. ’뭐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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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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