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망해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 중국과 미국으로 패권이 양분되지도 북미 유로 동북아 3개권역으로 패권이 삼분되지도 않는다.

why?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정치와 경제의 속성"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났다 죽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지 외부로부터의 변화와 사건 때문에 죽는것은 아니다. 즉 외적질서가 아닌 내적구조로부터 죽음은 생태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것이다.

미국도 건국초기부터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으로 성장한 나라다. 남북전쟁으로 심화되던 이 기류가 꺾인 시점은 세계대전 승전국이 되어 패권을 쥔 직후부터다. 이때부터 미국은 자만으로 망해가기 시작했다. 역사상 미국경제가 가장 호황이었던 때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다. 망하기 시작한 분기점이 가장 화려했던 것이다. 이후 미국이 망해가고 있는것은 외부로부터의 변화와 사건 때문이 아니라 국력이 패권에 도달하는 정점을 찍어냈기 때문이다.

패권정치처럼 자본주의 경제도 망해가고 있다. 산업혁명 이래로 자본주의는 과잉생산문제를 식민지,전쟁으로 해결해왔다. "피의 착취"로 발전해온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산생명을 죽이는게 한계에 도달하자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죽이며 성장하고 있다. 부채(debt)를 일컫는것이다.

부채폭증은 우리 자식세대들의 삶의 토대를 황폐화시킨다. 그럼 자식세대들의 삶만 황폐화시키나. 천만의 말이다. 현부모세대의 서민부터 시작해 중산층의 삶까지 점차 위로 올라가며 황폐화시킨다. 진보류들이 왜 "세계화" "신자유주의"에 목숨걸고 반대하는가. 그끝이 부채폭증,공무원 공기업 재벌노동자들의 정리해고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일본등 부채문제가 심각한 국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논의중에 하나가 공무원을 획기적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예를들자면 교사를 대거 자르고 인터넷 동영상강의등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군,경찰을 최소화하고 자율방범으로 대체하는 논의도 있다. 미국,일본만 그러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조선일보의 단골메뉴는 "제발 혈세 잡아먹는 하마인 공무원 숫자 좀 줄이자"는 하소연이다.

여기서 바로 미국의 살길이 나오는 것이다. 식민지확장도 힘들고,핵무기보급으로 인해 세계대전도 힘들다면 남은 패권수명의 연장수단은 오직 "부채의 세계화"뿐인것이다.

미국만 부채로 신음중인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아일랜드,스폐인,이탈리아,벨기에등 유럽국가. 일본,한국,중국등 동북아국가 또한 부채폭증으로 신음중이긴 마찬가지다.

1등에서 내려오지 않는 방법은 2등보다 더 발전하는것이 아니라,2등이하 경쟁자들을 골병들게 만들어 버려도 가능한 것이다. 미국달러화가 주도하고 있는 전세계적 부채확장(유동성 범람)은 결코 미국 자신만을 헤치는 무기가 아닌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미국이 부채로 망하고 중국등으로 패권이 이동할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부채의 속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부채,정확히 말하자면 화폐의 속성을 모르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부채폭증의 힘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것은 성장이면서 성장이 또한 아니다. 골병 들고 팔다리가 짤려나가면서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사람이 태어나서 30대까지는 건강하게 살다가 40대부터 점차 몸이 아프기 시작해 70대까지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중국은 10대때부터 고혈압,당뇨등에 시달리고 있는것이다. 부를 축적하는게 아니라 부만큼의 빚도 축적하고 있다. 이는 중국위안화가 기축통화로 성장하기 힘들다는것을 의미한다.

통화주조차익(seigniorage)의 확장은 부채의 확장,부채의 확장은 패권약화의 이미 그 시작이다. 그런데 작금의 중국은 내부부채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유럽은 더욱 처량하다. 유로의 출범자체부터가 미국,일본등에 대항해 규모의 경제(economics of scale)를 달성해 대항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궁극적인목적은 "조세제도등의 환수를 통한 부채문제의 통제와 부의 사수"에 있었다.

소위 회자되는 유로화의 위상확대는 이 근간을 근본으로부터 허문다. 유로화확장->부채확장->복지축소->정치불안의 매카니즘. 조지소로스같은 국제투기꾼은 금융투자이전에 화폐역사,화폐역사와 함께 정치 경제 철학사의 고수다. 그런 그들 눈에 무엇이 보이고 있겠는가. 미국이 망해가는것도 보이겠지만 진퇴양난에 빠진 유럽 그리고 성장하기도 전에 망해가고 있는 중국이 보일것이다.

미국이 아무 생각없이 과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과소비규모는 GDP의 10%수준에 달한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미국이 소비의 10%만 줄여도 건전성을 회복할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은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신의 부채폭증과 병행해 전세계 유동성 또한 범람하고 이는 다시 세계곳곳의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최종적으로 유럽통합 저해,중국정치 골병등의 미국위상추락의 저지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보급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비대칭적 불평등 관계"를 세계 곳곳에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구도가 향후,특정 나라가 잘 살고 그 나라의 국민이 행복한 구도에서 나라에 관계없이 그 나라의 소수만이 잘사는 구도로 재편될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미국,중국,유럽,한국의 대기업과 부자는 행복하고 미국,중국,유럽,한국의 영세자영업자와 서민은 불행해질것이란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더 느리게" "더 낮게" "더 약하게"다. 올림픽의 정신인 더 빠르게,더 높게,더 강하게와 반대되는 이 개념의 핵심은 바로 "애틋함의 복원"이다.

패권시스템,중독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율공동체의 모습을 회복시켜나가는것을 의미한다. 맨위에서 언급한 산업혁명 이래로의 과잉생산 문제에 대한 해법도 여기에 있다. 과잉생산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과잉에 있다. 소수에게 몰아서 과잉생산하는 구조에서 다수에게 몰아서 소량생산하는 "산출물의 과잉에서 사람의 과잉으로의 환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도권이 남한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충청도,강원도,제주도,경상도,수도권등이 고르게 생산하는 것이다. 독일,일본,중국등이 공산품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게도 사다리를 내려주는 것이다. "균형있는 지역주의로의 회귀"가 정답이라는 소리다.

이 정신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이 바로 김대중과 노무현이다. 남북균형발전,동서균형발전,수도권비수도권균형발전"등의 정책을 수행한 이유는 서러워서도 선택의 일단도 아니다. 균형과 평등으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경제문제의 난맥을 풀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틋함에는 지역주의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의 복원도 해당된다. 여기서의 민족주의란 폐쇄적민족주의를 일컫는것이 아니다. 남과 북이 하나되어 가치있는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는 상생과 화합의 민족주의를 말하는것이다.

최근 수구류들과 진보류들이 하나되어 이민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반대하면 민족주의로 몰아붙이고 있다. 잘못된 것이다. 원래 애틋함이란 가족,이웃 그리고 세계로 뻗어나가는것이다. 안으로부터 밖으로 퍼져나가는것이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여기는것이 아니다. 평등은 애틋함의 두터움과 옅음의 차이를 최소화시켜내는 것이지 아예 멸절시키는것이 아니다.

부모와 남이 물에 빠졌는데 마구잡이순으로 구한다면 그것은 평등주의자가 아니라 정신병자이거나 위선자일뿐이다. 한국인이 굶주리고 있는데 동남아로 달려가 결식아동을 껴안고 눈물 흘리는 연예인이나 진보주의자들은 정이 넘치는게 아니라 분별력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것이다.

그럼에도 진보류들이 묻지마 평등주의에 혈안인것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구류들이 이민정책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인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제국적세계주의와 패권적자본주의를 이식시키는데 있어 저항을 줄여내는데 그보다 좋은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이 아니라 경제의 부속물로서의 "마리"로 전락시키는데 순기능적 민족주의를 말살시키는것이 가장 최적화된 정책인것이다.

생태적 자율공동체를 추구해 나가면서 화폐를 민간의 영역으로, 민간에서 지역공동체의 영역으로 가져와야 한다. 화폐금융을 국가에서 민간으로 내려보낸다는 뜻은 발권력을 중앙은행이 아닌 삼성 같은 재벌에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메가뱅크 정책을 폐기하고,은행을 소형화 지역밀착화하고 공동체내부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시스템을 확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작금의 모든 경제적 폐해의 근원은 화폐의 기능을 은행이 가져가면서 대형화되고,대형화된후 국가와 유착하다 빼앗긴데서부터 비롯되었다. 그 후 산업을 장악한 거대자본이 은행,관료와 유착하는 "금융마피아" 집단의 위력이 만연화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위기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폐해의 해법은 그 장악력과 안정성을 떨어뜨리는것뿐이다.

은행이 불멸하는것은 말도 안된다. 은행은 망하고 태어나야 한다.(그래야 역설적으로 은행은 망하지않고 안정된다)대형화되는것은 더욱 말이 안된다. 그럼 은행이 망하는 순간 국가도 망한다. 무엇보다 은행의 편리가 특정계층에 집중 되는것이 가장 말이 안된다. 대기업과 부자등 소수가 은행을 독점하는것이 빈부격차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정부의역할은 은행이 독점되지 않고 자유경쟁되고,자연발생하는 빈부격차는 공공금융과 이전지출의 확대로 완화시키는데 집중되어야 한다.

이상의 핵심은 느려지는것이다. 근로자는 노동에 쫒기지 않고 학자는 성과에 쫒기지 않는다. 장시간저임금근로는 인간다움을 말살시키고 성과주의는 학문의정신을 망각시킨다. 그러지않고 원하는것을 마음놓고 할수있을때 이타적인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만개할수 있다.

도시로 집중해 높아지는 건물,그 도시간의 빨라지는 교통과 통신도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있는 일등공신이다. 사람들은 쫒기는 것에 대해서는 치를 떨지만 빨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환호한다. 오세훈과 김문수가 GTX를 이야기했을때 심상정과 유시민은 지역공동체내부에서의 교통편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수도권주민들은 너나할것 없이 코웃음쳤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100층짜리 빌딩과 아파트가 경제를 발전시켜줄거라는 믿음도 철썩같다. 그렇게 죽은 무생명이 높아지고 거대해질수록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이다. 도시가 촘촘해질수록 삶은 빡빡해진다. 흙과 숲 그리고 강물이 사라지고 난 자리를 대신한 콘크리트는 시민의 쾌적함을 우울함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그 위를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시민들의 뇌속은 온통 대량생산된 소비재를 하나라도 더 소비 하려는 탐욕과 중독으로만 가득차 있다. 자신이 지배되고 있다는 인식의 상실조차도 느껴내지 못하면서 말이다.

더 약해지라는 것은 자연앞에서 더 겸손해지라는 것이다. 이명박같은 인간은 산과 바다를 없애 문명을 확충하고 그 속에서 인간행복을 늘려낼수 있다고 믿는듯하다. 환경에 대한 투자는 인간의 탐욕이 망가뜨린 자연의 회복속도를 늘려낼수 있는 기술을 의미하는듯 하다. 그것이 초래할 재앙은 오로지 자연에 대한 훼손속도의 가중뿐이다.

자연을 망가뜨려온 인간들이 여전히 자연을 망가뜨리는 행태를 멈추지 않은채 그 자연을 되살리는 산업의 부흥으로 다시 한번 자연에 도전하려는 작태야 말로 끔찍하기 그지없다. 자연과 생태 그리고 녹색을 입에 달고 시민들을 훈계하며 먹고사는 직업의 확장에 혈안인 진보류들의 작태 역시 끔찍하다.

최근 봉사활동을 하다가 한 어려운 처지의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소위 복지단체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나 시민단체사람들을 보면 구역질이 치민다는것이다. 그들에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소명은 없고 오로지 그런 사람들을 빌미로 한 직업과 이익만이 존재한다라는것을 체감하기 때문이란다. 그들은 그 이익의 견고화와 확장에만 혈안이다.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진보단체가 오히려 장애인의 앞길을 막고,자연을 위한 녹색진보단체가 오히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막는다. 대기업 진보노조는 비정규직들을 위한다면서 파업한후 그들의 희생을 담보로 인상된 월급을 받아먹고,그들이 막상 처우개선을 위한 파업을 단행하면 사다리를 걷어차는데만 혈안이다. 노조가 노동자를 위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이다.

그들은 겸손해지고 협력해야한다는 본분을 망각한채 세계화의 주구인 재벌의 배밑에 깔려 배꼽을 맞추느라정신없이 살아온지 이미 오래인것이다. 결국 이런 패악질은 누군가의 처참한 희생으로만 복원될듯 하다. 간절한 희망과 염원을 긴시간동안 발밑으로 꾸겨넣어 쳐박아버린채로 말이다.

지금 시민이 필요로 하는것은 바로 김대중 노무현정신의 계승과 발전이다. 그 정신의 기치 아래서 시민들이 느끼는대로 실천에 나서는것이다. 그 실천의 핵심이 바로 "참여민주주의"다.

초등학교 앞에서 사탕을 주며 유혹하는 유괴범같은 악질정치인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현대건설,서울시 그리고 대한민국을 부채로 넘어뜨리고 있는 이명박과 같은 인간을 쳐내는것이다. 서민의 고통이 극에 달한 이 마당에도 "줄푸세" 한마디 던져놓고 침묵중인 독재자 딸 박근혜를 쳐내는것이다.

시민이 필요로 하는 것은 부채를 줄이는 것이지 세금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꼭 필요한 규제를 늘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지 그런 규제를 풀어 약자의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와 부자의 법규와 도덕을 세우는것이지 법없이도 살 약자들의 비명소리에 철퇴를 내리치는것이 아니다.

증세없는 복지도 필요없다. 조세개혁 없는 지속불가능한 복지는 솜사탕이 아니라 독묻은 과자에 불과할뿐이다. 그럼에도 그 과자를 들고 대통령이 될 개꿈에만 빠져있는 정치인들은 널려있다. 집회한번 참가했다 갑자기 등록금인하로 방향을 바꾸는 "깨어나는 스피드가 초고속인" 정치인도 필요없다.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느끼는 대로 바로 실천하는 지행합일의 인간,작고 소소한 꿈을 아름답게 말할줄 아는 소탈한 인간, 자연 앞에 겸손하고 인간 앞에서는 더욱 겸손한 인간이다. 우리에게 거창한 대의나 비젼이 아닌 조금만 느리게 낮게 그리고 약하게 가자라고 말할수있는 인간이다. 작금의 시대정신은 정권교체도,묻지마뭉쳐도,조세개혁 없는 복지도 아니다. 바로 애뜻함이다. 사람 내음이다. 거짓말과 위선의 탈이 걷혀진 맨 얼굴로 마주보며 터놓고 이야기 할수 있는 진솔함이다.

지금 분명 미국은 망해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단기간에 절대 망하지 않는다. 미국은 마약으로 전세계를 중독시켰지만 가장 덜 중독되어 있는 마약상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의 쇠퇴하고 있는 독점자본주의를 이겨내는 길은 배금주의에 중독되어 있다라는 사실의 인식,그 인식으로부터 탈출할수 있는 사람다운 모습의 길을 모색해 실천에 옮겨내는것뿐이다. 언제부터. 바로 지금부터. right now!

원글 / 더 느리게, 더 낮게, 더약하게 - 슬픈한국

Posted by 루리카
,